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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여성인권영화제 출품공모 결과 안내
조회수 : 1402
등록일 : 2019-09-01

제13회 여성인권영화제 출품공모 결과 안내

       

       

 여성인권영화제는 작품 저마다의 시선, 시선의 방향과 깊이에 주목합니다.       

올해 여성인권영화제에는 더욱 다양해진 주제와 질문이 담긴 300편의 국내외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이 중 심사단이 선정한 25편의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내년에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적인 현실을 직면하며 나아가 여성인권을 폭넓게 사유하는       

작품들을 경쟁부문에 모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출품해주신 모든 분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2019년 9월 1일      

여성인권영화제      

       

       

(가나다 순)      

       

3교대 // 정서윤, 이은경      

BEHIND THE HOLE // 신서영      

Class Ranandegi // Marziyeh Riahi      

Footsteps // Claudia Kedney-Bolduc      

경원(敬遠) // 박소영      

계양산 // 주영      

공명선거 // 박현경      

기대주 // 김선경      

나의 새라씨 // 김덕근      

대리시험 // 김나경      

령희 // 연제광      

립스틱 레볼루션 // 양소영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 // 조한나      

분실 // 구양욱      

상주 // 차정윤      

수학여행 가는 길 // 송시윤     

우리는 서로에게 // 김다솜      

은서 // 박준호      

이상한 슬픔 // 오세호      

젖꼭지 // 김용승      

주근깨 // 김지희      

찌르개 // 임소라      

컷 아웃 // 공선정김지형한다혜한지희    

털보 // 강물결      

해미를 찾아서 // 허지은, 이경호      

       

       

 <제13회 여성인권영화제 출품공모 예심 심사평>

       

김현(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여성의 이야기를 지금 이곳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300여 편의 작품을 보면서 가슴이 뜨거웠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증언하고, 폭력의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은 물론 다양한 관계망(연애와 우정과 가족) 속에서 여성은 어떻게 위치하고, 위치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작품들에는 잊고 있던 여성의 고유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여성 감독의 출현에 설렘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대중, 장편, 영화시장에서는 결코 생산될 수 없는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여성의 현실을 영화화하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와 도전을 필요로 하는지를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절실하게 지금 이곳의 여성 문제에 관해 묻고 대답을 듣고자 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평가나 심사를 한다기보다는 더 많은 응원과 지지를 하고자 하였음을 고백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영화들은 고유한 듯, 보편적인 여성 인물이 작품에 녹아든 경우였다. 그 영화들은 여성을 이분법적으로(예민하거나 불우하거나) 재현하는 우를 넘어서서 우리의 가까이 있으면서도 우리가 보지 못했던 여성을, 우리와 멀리 있으나 우리의 곁에 있는 여성의 얼굴과 목소리와 서사를 잡아내고 있었다. 기술적으로 다소 거친 면을 넘어서서 보는 이에게 고스란히 감정을 전달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관객을 설득하고 있었다.      

      

 보여주기를 넘어 해석하기. 재현을 넘어 재현의 윤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여성 영화들들은 영화 내부에서 에너지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밖으로, 보는 이에게까지 영화의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 일련의 영화들은 여성의 현실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차별과 혐오와 폭력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갔음은 물론이다. 여성이 영화적으로 대상화, 타자화 되어 있지 않았다. 그곳에 여성이 살아 있었다.      

      

 카메라로, 영화로 여성의 현실을 환기하고 여성인권 문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힘쓰고자 하는 모든 영화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눈이 어두워 미처 선하지 못한 작품이 다른 이의 빛나는 시선에 포착되어 밝혀지길 바란다. 출품작으로 선정된 영화와 영화인들에게 다시 한 번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올해 경쟁부문 출품작 300편은 영화제가 매년 조금씩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구체적인 수치다. 이번에는 해외의 영화인들도 출품하였으며 기성 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 출품이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단편 위주의 출품경향에서 장편도 다수 포함된 점이 특기할만하며, 극영화가 여전히 주류를 형성하지만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애니메이션의 고른 분포도 보여주고 있다. 이중에서도 실험영화의 괄목할만한 성장이 눈에 띈다. 여전히 리얼리즘 드라마가 강세를 이루지만 상징적, 은유적인 시각언어를 활용한 실험적 시도를 통해 영화적 깊이를 더하고자 하는 몇몇 작품들로 인해 작품성 면에서 지난해에 비해 한층 성장하였다.      

 지난해에 이어 호러, 스릴러, SF 등 익스트림 장르가 확대되었다. 젠더와 관련된 현실의 무의식적 공포와 불안을 장르의 상징 언어 속에 담아내는 젊은 영화인들의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 특히 두드러진 점은 뮤지컬 장르를 선보인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편이나 아마추어 영화에서 뮤지컬 넘버를 창작하고 이를 스토리에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시도이나 완성도 높은 작품이 꽤 포함되어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장르적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그 어느 때 보다 풍성했다.      

 출품작 경향은 매년 사회의 트렌드에 맞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첫째, 결혼, 이혼, 이주 등을 포함한 가족 문제. 둘째, 여성의 독립과 관련된 취업과 진로 문제, 셋째, 연애, 데이트, 로맨스 등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 넷째, 아동,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약자 문제. 다섯째, 영화인 정체성을 가지고 생존하는 문제. 여섯째, 치열한 경쟁 및 인간적 성장 공간으로서의 학교 문제. 일곱째, 일상적 성폭력으로 인한 여성의 공포 문제, 여덟째, 사회정치적 모순에 대한 공동체적 관심과 연대 문제 등. 여성의 시각에서 느끼는 각종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반영한 영화적 소재는 이처럼 다양하다.      

 지난 몇 년간 페미니즘 담론이 폭발적으로 고양되었고 이제 일상의 젠더 구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이주민, 범죄 피해자 등 사회 약자에 대한 관심과 이들의 공동체적 연대에 대한 의식의 성장을 출품작들이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보다 포괄적으로 여성인권’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젠더 폭력이나 혐오 문제를 넘어, 사회변혁, 자본주의와 노동, 노인, 아동, 부의 양극화, 역사, 권력 문제 등 다종 다기한 사회문제를 반영하는 영화가 올해 여성인권영화제를 통해 출품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와 고민이 반영된 출품작들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온몸으로 체감하는 다채로운 고민과 마주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낯선 소재의 영화들이 포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들은 기존 영화언어의 관습을 따르고 있거나, 여성 문제를 자조적이고 부정적인 무드로 그리면서 생동하는 삶의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재주의, 감상주의, 부정성과 자기비하를 넘어 상상력을 통해 보다 긍정적인 대안을 구상하며 현실의 문제를 뛰어넘었으면 한다. 올해 출품작의 양적 성장과 소재적 다양함, 형식적 시도는 한국 여성영화의 미래를 희망을 가지고 기대하게 한다.      

       

       

홍재희(영화감독)      

       

2019년 올해의 경향을 추려보자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날로 심해지는 여성혐오와 성폭력을 다룬 영화. 20-30대 1인 가구 홀로 사는 여성을 노린 성범죄에 불안에 떠는 여성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다룬 작품과, 세대 연령 직업을 막론하고 날로 기승을 부리는 한국 남성들의 불법 도촬에 대하여 그 심각성을 고발하는 영화가 매우 많았다. 영화가 현실을 바라보는 창이라면 이 같은 서사를 다룬 영화는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열악하고 성차별적인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공포에 노출되어 있다. 일상적으로 공포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항시적으로 불안하다. 이 사회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보장받으며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힘들다. 직장에서 술자리에서 택시에서 성희롱을 당하거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몰카 때문에 불안하고 애인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하거나 모르는 남자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남친에게 남편에게 두들겨 맞거나 길에서 우연히 살해당한다. 극도로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여성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남자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남성이 인간으로서 누리는 지극히 당연하게 누리는 아주 평범한 삶을, 여성은 그 평범한 삶조차도 남성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고 겨우 숨만 쉬면서, 우연에 맡겨야 하는 사회적 약자다.       

둘째. 어머니와 딸 그리고 손녀로 이어지는 여성만으로 구성된 가족 이야기가 늘어났다. 소위 정상가족이라는 결혼한 이성애자 부부와 자식으로 구성된 4인 기준의 핵가족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 둘만 사는 싱글맘 가족이거나 여성이 자신의 자식과 어머니를 부양하는 모계 3대이거나. 여하튼 꽤 많은 단편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지워진(설령 있어도 아버지는 항상 부재중이거나 이혼해서 같이 살지 않거나 아예 아버지가 없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한부모 가정의 등장이 예년보다 더욱 빈번해졌다. 어머니와 딸(아들)로 구성된 한부모 가족 또는 레즈비언 커플을 포함 혈연관계가 아닌 여성들의 동거가족, 의붓형제가 결합된 싱글맘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모계 가족을 그린 단편이 많아졌다. 이는 아마도 급속도로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실제 가족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의 관념 속에 정상가족이란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미 현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상가족 자체가 빠르게 해체되고 혈연을 기반으로 한 가족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정상가족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영화가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임금노동과 가사/육아라는 이중노동에 고통받는 여성 노동자의 삶과 일상을 다룬 영화가 많아졌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영화로 바꾸었다고나 할까. 임신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비롯,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전담하느라 과로하는 워킹맘, 가사와 육아 그리고 봉양이라는 삼중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 육아의 고충으로 갈등하는 부부 등등. 물론 남녀가 공히 임금노동에 종사하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가정 내에서는 가사노동이 오로지 여성-아내의 몫이라는, 성별에 따른 분업이 여전히 당연시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영화는 작년에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성별 분업이 실제 벌어지는 현장 즉 가정으로 들어가 가정생활에 카메라를 들이 댄 이야기, 여성(아내)과 남성(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야기, 좀 더 구체적인 일상 하나하나에까지 세밀하게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가 많았다.      

       

근래 출품작을 보면 당연히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이주민, 미등록 노동자, 난민, 중국교포, 성소수자, 장애인, 치매 노인, 해체된 가족 등을 다룬 영화가 쏟아진다. 예를 들어 아시아계 이주 여성, 무슬림 노동자, 탈북민 범죄자, 조선족 범죄자, 게이 레즈비언의 사랑과 연애, 미투 운동을 배경으로 한 직장내 성희롱, 가사노동과 임금노동 사이에서 분투하는 82년생 김지영들, 비혼모, 싱글맘, 노후 돌봄, 고령화, 치매, 이혼 재혼으로 해체되고 결합한 유사가족, 막장가족, 입시에 미친 스카이캐슬형 부모와 자식, 학교 폭력, 십대 가출팸, 디지털 성폭력, 몰카, 스토킹, 데이트 성폭력 등등. 이 중에 둘 이상이 결합되기도 하고 장르적 변종을 꾀하기도 하지만 소수자성을 여러 가지로 버무린 거의 비슷한 소재의 반복이다. 소재와 주제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기존의 남성-군필-이성애자-비장애인’이라는 프레임으로 극도로 기울어져 있는 상업 영화를 비추어 볼 때, 단편과 다큐멘터리와 같은 독립 영화에서만큼 사회적 약자가 주체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점은 고무적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같이 소수자성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공감 없이 도구로 가져다 쓴 소재주의 영화가 태반이다. 영화마다 인물이 처한 현실과 사회에 기반하지 않고 창작자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개연성 없는 인물군이 범람한다. 물론 감독 자신이 소수자이거나 감독이 꼭 소수자성을 경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고자 하는 인물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을 때, 그저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만 가득할 때, 소수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감독 자신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이 부재할 때, 소수자성은 단지 자극적인 소재로 희화화된다. 그 점이 불편하고 거슬리고 뭣보다 너무 아팠다.      

영화에서 개연성 없는 폭력은 폭력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그저 폭력난무다. 언어폭력이든 성폭력이든 물리적 폭력이든 뭐든 간에 폭력을 행하는 가해자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한국인)의 시선으로 피해자(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을 묘사하는 폭력장면에 내가 분노할 수밖에 이유, 그 무신경함과 무지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폭력이 폭력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되려면 폭력을 행하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감독은 자신을 어디에 위치시키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폭력에 대한 냉엄하고 철저한 감독의 시선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선 없는 폭력은 말 그대로 폭력의 전시다. 시나리오(영화) 한 편에도 작가(감독)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대상화하여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한다면? 자기 객관화와 공감능력이 결여된 작가(감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한국 영화에서 어이없게도 남성 주인공의 각성이나 복수의 동기부여, 서사의 터닝 포인트를 위한 장치로 쓰인다. 한국 영화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언제든지 내러티브 전개상 필요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 같은 프레임에서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번 출품작 단편 중에도 이 같은 영화가 많았다. 줄거리와 연출의도에 아무리 가해자의 악행을 고발하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전달하려는 의도라 한들 창작자가 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섬세한 감수성이 진지한 성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피해자인 여성의 위치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폭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의 위치에서 폭력을 옹호’하게 되는 것이다.      

기획/연출의도에 여성 인권을 유린하는 성차별적 사회에 경종을 울리겠다고 미투 운동까지 언급하며 호언장담 해놓고 맞고 욕먹고 모욕당하는 여성과 여성의 몸을 그대로 노출한다면 여성의 인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몸을 전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성에게 욕설을 퍼붓고 여성이 얻어맞고 강간당하는 장면을 세밀히 묘사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강변한다면 그는 영화라는 허구와 현실 세계 그리고 예술가의 자의식과 사회적 윤리의식과의 차이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토록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결여되어서야 어떻게 예술가라 할 수 있는가? 자격이 없다.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폭력장면이 없다하더라도 스토킹, 데이트 성폭력, 불법 도촬과 같은 디지털 성폭력과 낙태 같은 소재를 코믹하고 가볍게 다룬 영화도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게 그렇게 웃긴가? 물론 코미디와 풍자를 하면 안 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장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문제 삼는 것이다. 실존하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지워지고 왜곡되고 억눌리는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을 일회용 소재처럼 다루고 풍자라는 말로 이를 희화화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시선이 왜곡되어 있다면 대상에 대한 표현 방식도 변질된다. 괜히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싶었다“라는 연출의도를 밝힌 감독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약자와 소수자를 위로하기는커녕 불쾌하게 만드는 영화, 값싼 위로 따위로 포장한 영화가 더 많았다. 감독들이 밝힌 위로가 공감과 연대가 아니라 혹시 자신이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위치에서 약자를 내려다보는 시선, 즉 나보다 못한 약자에 대한 동정과 연민은 아닌지 감독 스스로 자신을 먼저 의심해 봤어야 한다. 자신이 곧 타자이며 타자가 나라는 자기인식, 자기 성찰이 없는 한 약자에 대한 공감은 말뿐인 공감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세기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은 약자들의 비극은 바로 내 일처럼 가까이에서, 반대로 강자와 기득권은 멀리서 우스꽝스럽게 희화화시켰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출품한 감독들이 이를 반대로 실천하는 단편을 찍었다. 타인의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어떤 고통도 남의 일일 뿐이다. 고통받은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떤 비극도 그저 우습고 재미난 소재일 뿐이다. 그리고 그처럼 사고하는 감독의 인권 젠더 감수성은 아마도 바닥일 것이다.       

영화 바깥의 세계가 성폭력이라는 사안을 충분히 심각하게 인식하거나 대처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영화 속 세계에까지 드러나는 성찰 없음’과 폭력에 대한 무지함’을 단지 '현실이 그렇지 않나 또는 현실을 그대로 그렸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한다면? 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감독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연출한다. 존재하는 현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떤 시각으로 해석하느냐가 바로 창작자인 감독의 세계다. 감독의 연출의도란 다시 말해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석한 감독의 진실을 화면 속에 보여주는 것이 영화다. 따라서 감독이 연출의도 따위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리를 아무리 떠들어 댄들 만들어진 영화가 그 감독이 생각하는 바를 그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 출품작 중에는 여셩주의 시선으로 여성의 삶과 한국 사회에 냉철한 시선으로 사회를 비판하되 인간에 대한 온기를 잃지 않는 수작도 많았다. 인권 젠더 감수성을 지닌 감독에는 여성이 절대적으로 다수였지만 아주 소수이지만 남성 감독의 작품도 있다는 것이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여성이라고 여성혐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여성이라고 전부 페미니스트가 아니듯 남성이라고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는 것 또한 아니다. 페미니즘은 성별과 젠더에 따라 차이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를 뛰어넘는 인간다움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여성문제를 여성주의 시선으로 다루는 남성 감독의 영화도 점차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