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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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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의전화가 만들어가는 세상

1983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세상에 알리다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아내구타 등 여성폭력문제 전문 상담전화를 개통하고, 상담원 교육을 시작했다.
단어조차 낯설었던 아내구타 피해여성을 돕겠다고 전화기 한 대를 놓고 시작한 상담은 현재 전국 200여개의 상담소로 확대되었다.

1983년 아내구타 실태조사

한국 최초의 ‘아내구타’에 관한 실태조사는 1983년 한국여성의전화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서울지역에 있는 708명의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2%의 여성이 맞은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여성의전화가 사회에 알려냈다. 또한 이 실태조사에서 ‘아내구타’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도 했다.

1983년 여성주의 상담

1983년 6월 시작된 ‘여성의전화 상담’은 전통 상담과 차별되는 것으로 그 지향과 방법론이 끊임없이 모색되어 왔다. 1회 상담원교육에서는 여성학과 상담이론을 절반씩 배치하였고 매 강좌마다 분반토론을 필수로 하여, 상담원 스스로의 자기성장과 변화를 동반토록 했다. 여성주의 상담은 이론만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모색되며 여성의전화에게 상담은 곧 (여성)운동이다. 여성주의 상담에 대한 연구는 1988년 “여성의전화 상담론 워크숍”을 시작으로, 2005년 “왜 여성주의 상담인가” 출판, 여성주의상담전문가양성교육, 2010년 여성주의상담실천연구소 개소, 2012년 “여성주의상담과 사례 슈퍼비전” 출판 등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1984년 여성호신술 강좌 개설

1983년 한국여성의전화 개원초기, 상담이라는 사후대처 뿐 아니라 예방활동을 모색하던 중 여성호신술 강좌를 개설하여 여성호신술을 보급하였다. 첫 강좌는 1984년 12월부터 10주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여성호신술이 전무한 상태에서 연세대 체육과 교수가 여성 호신술 동작을 개발하여 진행했다.

1986년 베틀여성모임(구타 아내 자조 모임)

‘쉼터’를 거쳐 간 여성들의 후속모임으로, 처음에 ‘위기여성모임’으로 시작하여 88년 이후 ‘베틀여성모임’으로 명칭이 바뀌어 지속되고 있다. 공식적인 상담의 과정이 끝난 후에도 자조모임의 성격으로 일정기간 모여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집단 상담의 효과를 얻고자 하였다.

1986년 여성수첩

1985년 여성학 스터디 그룹으로 시작된 ‘젊은 여성모임’의 활동결과물로, 독일의 여성수첩에서 힌트를 얻어 1986년 탄생되었다. 여성 이슈에 대한 정보서인 동시에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보여주는 징표로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 되었다.

1987년 쉼터

1987년 3월 14일 사무실 일부를 개조하여 처음 시작하여 6월 전세방으로 독립한 그 곳, 그때는 그 곳을 부를 이름이 없었다. 여성의전화 사람들은 shelter house와 발음도 비슷하고 쉼 자리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쉼터’로 명명했다. 이제는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위한 비상휴식처, 긴급피난처라는 사회적 개념과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95년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모임

한국여성의전화 남성회원들이 만든 소모임으로 지금까지 남성들의 성평등 의식을 고취하고 있는 소리 없는 교두보이다. 이 모임에서 발간한 자료집 「men`s work」는 남성들을 위한 좋은 여성학 교재가 되기도 했다.

1997년 상근활동가 산전산후 90일 휴가제 및 육아수당지급

시민사회단체로는 처음으로 1997년 1월에 90일 산전산후 휴가제를 도입하였다. 최초의 수혜자는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인 정춘숙 대표다.

2009년 아시아여성네트워크 출범

여성에 대한 폭력이 하나의 국가만의 일이 아니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발생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설립 초기부터 국제연대 사업을 해왔던 한국여성의전화는 2005년 아시아여성네트워크를 결성하여 여성폭력추방을 위한 법, 제도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한편,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여성인권운동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왔다. 2009년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주최한 아시아여성네트워크포럼에서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아시아여성 네트워크”를 공식출범하였으며 현재 함께 하고 있는 국가는 몽골, 필리핀,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이다.

● 여성의 살 권리를 許하라!

1988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 성폭력 정당방위 변○○씨 사건

1988년 9월 10일 한밤 중 귀가 길에 변○○라는 주부가 달려드는 강간범의 혀를 잘라 자신을 방어하였으나 오히려 ‘상해죄’로 징역 1년의 구형을 받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시민대토론회 등으로 이 사건을 여론화하여 성폭력의 위기에 처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정당한 자기방어>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고 이러한 노력으로 이 사건은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대종상을 받기도 했다.

1991년 가정폭력 가해자 살해 정당방위 사건 - 최초의 구명운동 남○○씨 사건

1991년 2월 구타남편을 살해한 남○○ 사건은 여성의전화가 대대적으로 구명운동을 벌인 사건이다. 당시 임신 4개월이었던 남○○은 사건 당일, 남편에게 폭력을 당해 장이 파열되고 아이를 사산했다. 남○○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여성의전화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2심에서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무죄석방을 주장한 한국여성의전화의 요구에는 못 미쳤지만 아내를 구타하는 가해자를 살해한 것을 정당방위로 규정한 최초의 구명운동이었다.

1999년 노인여성인권긴급공청회–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1998년 9월 11일, 서울가정법원은 당시 일흔이었던 이○○씨가 남편을 상대로 낸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 이혼소송에 대해 ‘해로하라’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가정에서 여성의 재산권은커녕 부부의 재산은 부부공동의 소유란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씨가 결혼 생활 전반을 통해 고통받아온 가정폭력 사실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고등법원에 항소한 이○○씨는 한국여성의전화와 상담을 시작하였다. 본회는 ‘노인여성인권’ 긴급공청회를 개최하고, 2차 재판 모니터링 및 진정서, 탄원서 제출 등 지속적인 지원활동을 하였고, 99년 8월 고등법원판결 승소, 2000년 9월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황혼이혼이라는 용어를 한국사회에 처음 등장시킨 사건이자, 이후 여성노인 인권문제와 여성의 재산권 문제로 논의가 확장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 최소한의 법 – 법제정운동

1991년 성폭력 관련법 입법을 위한 공청회 개최

창립 당시부터 여성폭력 관련법 제정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한국여성의전화는, 활동가들이 인신매매단으로 경찰에 연행(1991. 1. 21)된 것을 계기로 1991년 4월 18일 '성폭력관련법 입법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 성폭력관련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하였다. 그 후 지난한 투쟁을 통해 마침내 1993년 정기국회에서 '성폭력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애초의 주장은 가정폭력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었으나 법제정과정에서 가정폭력이 제외되어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이 별도의 법으로 제정되었다.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관련 법률의 제·개정에 많은 역량을 기울여 왔다. 성폭력특별법 외에도 여성발전기본법,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에 함께 했으며,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률’은 한국여성의전화가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통해 집안일로만 여겨지던 가정폭력이 사회적 범죄로 정의될 수 있었다.

1999년 여성의 경제세력화 운동

이혼과정에서 여성들이 부딪히게 되는 재산권 문제, 여성노인들의 황혼이혼과 재산권 문제, 여성의 정당한 재산권 확보 등에 대한 관심에서 1999년 부부재산 공동명의 운동을 시작했다. 여성의 경제세력화 운동은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고, 민법과 세법의 변화까지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여자와 돈에 관한 이야기' 다큐멘터리 제작, '그녀의 25시 366일' 인터뷰공모전 및 전시회, '소녀, 마술경제캠프에 가다' 청소녀 캠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 미래세대와 함께

1992년 여성주의적 청소년 성교육 교재 '자라는 우리, 배우는 성' 발행

이 교재는 남성위주의 성교육 교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1992년 광주여성의전화가 발행한 최초의 여성주의 성교육도서(단행본)이다. 여성의전화는 청소년성교육과 학교내성폭력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 '청소년 성교육을 위한 교사교육'과 '학교 내 성폭력실태조사'를 전국에서 실시하기도 했다.

1995년 딸들을 위한 캠프

가부장적, 성차별적 사회에서 청소녀들이 능동적이고 당당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지하고자 기획된 캠프.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내 몸과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인식을 공고히 하여,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바탕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이후 청소녀들을 위한 경제캠프로 발전하였다.

2011년 즐거운 데이트를 위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 『데이트 UP 데이트』

한국여성의전화는 상담 과정에서 데이트관계에서의 폭력의 심각성을 발견하고, 2006년부터 데이트폭력에 관심을 가져왔다. 2011년에는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고자 『데이트 UP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였다. 연애에 관심 있는 2-30대를 대상으로 제작되었으며, 연애의 준비부터 끝까지 나의 연애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내용과 즐거운 데이트를 하기 위한 조언들로 구성되었다. 발표 1주일 만에 수 만 건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며 인기 애플리케이션에 오르기도 했다.

2015년 가정폭력예방 동화책 ‘문을 활짝 열어봐’ 제작

한국여성의전화는 20여 년 동안 폭력예방교육을 진행해오면서, 아동 대상의 폭력예방교육 교재가 전무하다시피 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2015년 저학년 어린이와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가정폭력예방 동화책을 개발하였다. 동화책 ‘문을 활짝 열어봐’는 먼지 속에 사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의 판단을 존중하며, 먼지를 털어내고자 용기를 낸 아이를 지지하는 이웃의 모습을 담고자 하였다.

● 일상의 문화를 바꾸다

1989년 가정폭력 관련 영화 제작 - 굴레를 벗고서

아내구타의 심각성을 사회에 고발하고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성폭력 추방을 위한 영화제작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영화제작에 들어갔다. 이 영화는 이현승(당시 30세)씨가 감독을 맡았고 스탭들은 인건비도 받지 않고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면서 갖은 노력 끝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후에도 한국여성의전화는 애니메이션 ‘도하의 꿈’, 다큐멘터리 ‘여자와 돈에 관한 이야기’, ‘앞치마’, ‘쉼터를 만나다’ 등을 제작하여 여성인권문제를 대중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91년 세계성폭력추방주간 소개 및 행사주관

1991년 미국의 Women's Global Leadership Institute에서 23개국 여성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워크샵에서 결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해 세계 23개국이 함께 참여하는 16일간의 ‘제1회 세계성폭력추방주간’을 주관하여 성폭력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열었다. 이 기간 중 세계여성들과 함께 여성의 인권과 성폭력 문제를 UN의 중심적 관심사로 포함하는 것을 촉구하는 100,000명 서명을 받아 Women's Global Leadership Institute를 통해 UN에 전달하였다. 이후 이 기간은 세계적 캠페인 기간으로 설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06년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며, 여성폭력에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절박함으로, 여성인권운동단체로서는 처음으로 2006년 영화제를 시작했다. 국내에 최초로 선보이는 주옥같은 여성인권영화들,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다양한 부대행사들로 현재는 여성인권 이슈를 충만하게 즐길 수 있는 여성축제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여성폭력예방 공익광고 제작

국내 여성단체로는 처음으로 가정폭력 예방 공익광고를 제작하였다. 가정폭력은 범죄라는 메시지를 담아 그 심각성을 고발하고 ‘당신이 침묵하면 폭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 아래 대중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광고였다. 지하철, 케이블, 관공서, 포털사이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송출하였으며,이후에도 매년 여성폭력예방 공익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2012년 동네방네 프로젝트 – 가정폭력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지역사회 네트워킹 모델 만들기

1990년대 후반 여성폭력 관련 법제화와 상담소 제도화 이후 지역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법과 제도의 변화만이 아닌 인식과 문화의 변화를 위해 지역여성운동을 시작했다. 2000년부터 본격화된 지역여성운동은 정책모니터링과 예산모니터링에 집중되었던 것에서 지역여성리더 발굴과 지역운동축제, 문화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2012년에는 마을 주민, 지구대, 교회, 구청, NGO 등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주민 누구나 주변의 폭력을 쉽게 알아채고, 또 피해 여성은 어디에나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가정폭력 없는 움직이는 마을’ 모델을 개발하였으며, 이는 서울시의 ‘여성안전마을’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2015년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캠페인

2015년 한국여성의전화는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란 슬로건으로 연중 캠페인을 펼쳤다. 본회는 그간 수많은 폭력 피해자 및 생존자들을 상담하며 폭력 상황은 처음에는 지나칠 수 있을 법한 비/언어적인 표현 등에서 시작됨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상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폭력이 사소하게 다뤄지지 않는 문화를 확산하여 피해자와 방관자의 ‘의심’을 지지함으로서 피해자들이 폭력을 초반에 인지 및 대처하고 이후의 사태까지 예방할 힘을 낼 수 있도록 돕고자 하였다. 거리캠페인, 사소한 전당포, 버스광고와 지하철광고, 먼지차별 캠페인, 페스티벌 킥 등 다양한 통로로 시민들을 만나 ‘당신이 겪은 폭력과 차별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담은 활동을 펼쳤다.

● 그런 말조차 없던 시절

성폭력

성폭력이란 용어가 일반에게 생소할 당시, 성윤리의 이중구조, 성의 상품화 등 성의 불평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각종 폭력현상들을 ‘성폭력’(Gender violence)으로 개념화했다(1983년 12월 10일자'베틀'). 이후 사회적으로 꾸준히 성폭력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는 가운데 오늘날과 같은 의미가 일반에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여성의전화가 의미하는 것은 Gender violence인데 반해 사회적으로는 Sexual violence로 인식되고 있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내강간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운동을 하면서 여성의전화는 아내강간도 성폭력 범주에 포함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2000년 처음으로 아내강간 토론회를 개최하여 사회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러나 가정폭력방지법 제정과정에서도 이 조항은 삭제되어 문제로 남아 있다가, 2013년 5월 16일에 대법원에서 아내강간을 인정하는 첫 판례가 나왔다.

자원활동가

1983년 개원 당시 상담원들은 소위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여성운동의 사명을 지니며 활동하는 그들에게 ‘봉사’라는 시혜적 용어가 적절치 않아, 자원봉사자라는 말 대신 자원 활동가라는 말로 명명하였다.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피해자의 22.8%는 결혼 전 데이트 관계에서부터 폭력피해를 입는다(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입소자 설문결과). 한국여성의전화는 데이트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심각성과 다양성을 드러내기 위해,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적,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폭력을 포괄하는 단어로 ‘데이트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근친상간을 ‘근친강간’으로

상담사례들을 보면 아버지나 오빠 등과의 성관계는 강요에 의한 명백한 성폭력이었다. 따라서 여성의전화는 근친상간이라는 말을 부적절한 용어로 규정하고 ‘근친강간’이라 명명하였다.

고부갈등을 ‘시집갈등’으로

한국여성의전화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얘기되던 고부(姑婦)간의 문제가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적 가족구조로 인한 문제로 보고 ‘시집갈등’으로 명명하였다.

먼지차별

‘Microaggressions’을 번역한 용어로, 작고 일상적이지만 소수자(성별, 성정체성, 인종 등)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를 담은 언어/비언어적인 표현을 포괄하여 '먼지차별'이라고 명명하였다.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도처에 깔려있고, 유해하며, 늘 치우지 않으면 쌓이는 '먼지'와도 같은 차별을 의미한다. 행위자가 의도하지 않고 행했거나, 칭찬의 의미를 담았다 하더라도 소수자를 배제하는 차별적인 언행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